한국 오픈 골프선수권 대회의 발차취 - 창립과 발전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는 아마추어에 비해 프로가 연덕춘(87)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골프의 활성화를 위해 프로골퍼의 육성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당시 서울컨트리클럽 이순용 이사장은 부임 초부터 프로골퍼 공백의 문제해결을 위해 고심했다. 이순용 이사장은 우리나라 골퍼의 수준이 국제적인 위치까지 올라서기 위해서는 국제 골프경기 교류 만이 그 타개책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골프국제교류를 위해서 무엇보다 선수가 있어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 결과 프로골퍼의 육성을 서둘렀던 것이다.
이순용 이사장과 연덕춘 프로의 노력으로 인해 한국에도 프로골프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으며 차츰 골프에 대한 소식도 퍼져 나갔다. 이때를 포착하여 서울컨트리클럽은 어려운 재정에도 불구하고 국내골프의 중흥을 위해 오픈골프선수 권대회 개최를 구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국내 첫 오픈경기가 되는 한국오픈골프경기를 1958년 9월11일부터 14일까지 4일간 서울 컨트리구락부코스에서 거행키로 하고 국내외 골프 단체에 공표했다.
이렇듯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제1회 대회는 국내의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를 비롯하여 소수의 미국, 자유중국선수들만이 참가하는 초라한 출발이었다. 하지만 이 땅에 제대로 된 대회를 만들겠다는 열의 만큼은 해외의 어떤 대회 못지않았다. 한국오픈은 골프협회가 창립되고 명분있는 대회로 해외에 홍보됨으로써 대회 중반기부터는 정상급골 퍼인 일본,중국 선수들이 참가, 자못 국제규모경기대회를 방불케 했다. 그 후 다시 뉴질랜드, 호주, 필리핀 등 선수들도 합류하여 경합을 벌이는 대회로 성황을 이루게 된다.
한편 제1회 대회부터 서울컨트리구락부에서 주관하던 한국오픈골프는 1966년한국골프협회(현 대한 골프협회)의 창립으로 그 주도권이 이양됐고 1970년부터는 본대회가 아시아 골프서킷경기와 병행하여 거행하게 됨에 따라 대회명칭이 한국오픈골프선수권 겸 아시아골프서킷대회로 변경됐다.
1982년부터는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제정한 매경오픈골프선수권대회와 아시아골프서킷대회를 겸하여 거행키로 결정함에 따라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는 독립경기로서의 위치로 되돌아왔다.